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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26 일상적 현실이 모습을 드러낸 유일한 순간_이대범
  2. 2009.04.22 Excursion_이은주
  3. 2009.04.20 '여가'처럼 그리기의 문제 _이은주

일상적 현실이 모습을 드러낸 유일한 순간_이대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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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아개인전, 원앤제이갤러리, 2008
전시카탈로그 서문


일상적 현실이 모습을 드러낸 유일한 순간

글.이대범 (미술평론가)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떤 작품을 감상할 때 우리는 그것이 ‘재현하는 내용’과 ‘내용을 재현하는 방식’을 동시적으로 인식한다. 이 중에서 상대적으로 쉬운 것은 재현하는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이 의식할 수 있는 관습적 체계 안에서 모든 것이 이뤄진다. 감상자는 재현자의 탈주를 예방하고, 그곳에서 안도한다. 그러나 중심을 이동 시켜 ‘내용을 재현하는 방식’에 방점을 찍으면 상황은 달라진다. 관습체계에 머무르고 있던 요소들이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탈주를 꿈꾼다. 재현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과 전달하지 않고자 하는 작품의 무의식이 ‘내용을 재현하는 방식’에 나타난다. 재현자와 감상자의 미묘한 불협화음은 여기서 발생한다. 감상자의 인식 바깥에 존재하는 것을 재현자가 작품에서 환기 시킬 때, 자신의 인식의 바깥을 바라봐야 하는 감상자는 불안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곳에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곳에 작품의 본래적 의미가 기거(寄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박진아의 작품으로 눈을 돌려보자.  


1. 재현하는 내용 :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일단, 특정 공간(야외, 파티, 밤의 공원, 전시장)에 놓인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은 특별한 행동을 하고 있지 않다. 잠시 잠을 자거나, 무언가를 먹는 순간에 있거나, 우두커니 서 있거나 앉아 있다. 혼자 있을 때에도, 사람들이 많을 때에도 그들은 그냥 그렇게 특별하지 않은 존재로 공간에 놓여 있다. 그들은 작가의 주변 인물들로 특정한 누군가를 지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 마저도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행동을 보여주고 있는 ‘어떤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


2: 내용을 재현하는 방식 :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캔버스 위를 빠르게 지나간 붓의 흔적들은 대상을 세세하게 묘사하지 않고 압축적으로 제시한다. 오히려 대상은 화면에 어눌하게 안착해 있다. 재현된 대상에게 향할 수 있었던 시선의 지향점을 붓의 흔적들이 독차지한다. 그렇다고 대상을 무의미한 존재로 환원시키지도 않는다. 분명 대상은 세세한 묘사가 따르지 않지만, 순간의 기억과 감정을 담아내듯 빠르게 지나간 붓질, 그것들이 중층적으로 쌓이면서 만들어 놓은 색과 톤, 그리고 화면의 구성이 대상을 담담하게 그러나 더욱 명료하게 재현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작가의 시선이다. 작가는 대상과 객관적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철저한 관찰자 시점에 놓여 있다. 주변 인물, 그리고 그들과 어울리고 있는 시간을 담아내면서도 말이다. 화면 속 인물들은 시선을 공유하지 않는다. 그들은 개별자로서 자신의 일(특별하지 않은 일)에 충실하고 있을 뿐이다. 사람들의 왁자함으로 가득한 공간을 기표로 사용하고 있지만, 대상들은 외로운 섬과 같이 다른 대상들과 분절되어 있다. 주변 인물, 그리고 그들과 어울리고 있는 시간을 담아내면서도 말이다. 즉, 그는 대상과 대상, 그리고 그들의 관계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만들고 있는 정서적․심리적 서정성의 세계를 화면에 재현하고 있다. (<문탠(Moontan)> 시리즈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행동을 하고 있으나, 이들의 행동은 하나로 모아지지 않는다. ‘동일한’이라는 수사는 ‘상이한 혹은 개별적’이라는 수사로 대체된다. 그러면서 재현되는 것은 대상 자체가 아니라 대상들의 바깥이다. 그리고 다시 바깥은 대상으로 침투하여 대상을 재현한다.)


EAT, SLEEP, HAVE VISIONS.

박진아의 그간의 작업에서 ‘재현하는 내용’과 ‘재현하는 방식’은 일관되게 지속되고 있다. 변화가 있다면, 분할된 화면에서 하나의 화면으로 옮겨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2개 또는 4개의 화면에서 하나의 화면으로 옮겨왔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전 개인전 제목(<여가(餘暇)>, <Excursion>)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사회적 생산체계에서 무의미한 행동을 작업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것들은 특히 화면에서 미묘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인물의 행동에 의해서 구체성을 지닌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4개의 화면은 시간의 차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구성과 붓 터치를 통해 회화적 차이를 드러내기에 적합했다. 그들은 하나이면서 미묘한 차이(단순히 시간뿐만 아니라 회화적인 측면에서)에 의해 하나가 아니다.

분할된 화면은 <문탠(Moontan)>연작에서 하나로 합치된다. 가운데 펼쳐져 있는 돗자리가 상징하듯 그들은 하나의 목적으로 이곳에 모였다. 그러나 박진아가 포착한 그들의 모습은 산만하다. 각자가 자신의 소소한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분할된 화면에서 볼 수 있었던 미묘한 차이들이 한 화면에서 다른 인물들을 통해 조합된다. 그러기에 이들의 모습은 중심에 있는 돗자리에 모이지 못하고 그 주변을 부유하고 있다. 이곳을 찾은 소기의 목적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문탠(Moontan)>에서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어두운 배경은 또 하나의 의미를 획득하고 있다. 어두운 배경은 주변부를 차단하면서 이 상황 자체에 주목하게 한다. 인물들이 중심에서 개별적으로 존재하듯이, 이 공간 역시 전체의 그 어떤 곳에서 떨어져 있는, 겉돌고 있는, 부유하는 공간으로 설정된다.)

박진아는 이번 전시에서 개별적 행위를 특정 행위로 제한을 둔다. 그리고 공간은 더욱 사람들이 붐비는 장소를 선택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만나고, 이야기하고, 웃고, 떠들면서 사람과 사람의 연결고리를 이어나가야 한다. 그럼에도 박진아의 그림 속 사람들은 작가가 제시한 제한된 행위를 하면서 그 시공간으로부터 일탈해 있다. <마지막 한 입>에서 화면의 중심에 있는 커다란 테이블을 따라가 보면 화면 중심에서 어떤 인물이 무언가를 막 먹으려는 순간과 마주한다. 주변 정황을 봤을 때, 많은 사람들이 머물렀다가 지나갔을 자리이다. 그러나 그 주변에는 그들의 흔적만이 있을 뿐 사람은 없다. 모든 정황은 생략되고 중심인물의 단지, 먹는 행위 자체만이 부각된다. 일상에서 벗어난 일탈적 공간과 가장 본능적 행위가 교차한다. <잠>에는 의자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인물이 있다. 이 인물 역시 파티에서 떨어져 있다. 화면의 중심에 인물이 놓여 있지만, 이 인물은 분명 파티가 열리고 있는 공간의 구석에서 잠을 자고 있다. 공간에 놓이지 못하고 외부로 벗어나 있는 인물의 묘사는 <감나무아래 피자먹는 남자>에서도 발견된다. 감나무 아래 남자는 허겁지겁 피자를 먹고 있다. 감나무와 피자의 조합은 낯설다. 즉, 이 남자는 피자를 먹고 있는 어떤 공간에서 벗어나 있다. <프로젝터 테스트>와 <그랜드 피아노>의 인물들은 앞선 작업들과 다르게 무언가 함께 하고 있다. 그리고 시선의 방향도 일치하거나 마주보고 있다. 그러나 이 작업에서는 공간이 인물을 압도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작업에서 박진아는 공간보다는 그 속의 인물, 인물 보다는 그 행위 자체에 방점을 두었다. 그런데 이 두 작업은 공간이 인물을, 그리고 그들의 행동을 압도하고 있다. 프로젝터의 푸른빛과 화면 중심에서 관처럼 놓여 있는 그랜드 피아노가 공간 전체 정서를 만들어 낸다.

박진아는 일상적 삶의 순간을 그린다. 그러기에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쉽게 마주 할 수 있는 순간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 순간으로 정지하는 것이 아니라 긴 여운을 관객에게 야기한다. 그것은 그가 ‘재현하는 내용’이 아니라 ‘재현하는 방식’에 방점을 두기 때문이다. 박진아는 가장 일상적인 순간을 제시했지만, 관객은 이 순간을 통해 가장 불안한 순간을 경험할 수 도 있다. 자신의 구축한 체계에서 벗어나 있는 그 순간 말이다. 그러나 이 순간, 인간의 일상적 현실이 모습을 드러낸 유일한 순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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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cursion_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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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아 개인전, 원앤제이갤러리, 2007
(2007. 5.17-6.16)
전시카탈로그 서문


Excursion
글. 이은주(큐레이터, 미술사) 


        박진아의 세번째 개인전인 이번 전시의 제목은 'Excursion'이다. 2005년 금호미술관에서의 개인전이 ‘여가(Leisure)’라는 제목으로 열렸던 것을 기억한다면, 박진아가 반복적으로 취하는 모티프가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는 일상적 활동들에 집중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가’ 전시에서 보여졌던 작품들은 팔을 뻗는다던가 간식을 먹는다던가 하는, 특별할 것이 없는 일상적인 동작들을 소재로 한 것이었다. ‘로모그래피 시리즈’로 일컬어진 이 작업들은 하나의 장면이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4개의 시퀀스로 찍히는 로모 카메라의 특성을 이용한 연작들이었다. 그림 속 인물들의 평범한 동작들이나 로모 카메라가 배가시키는 시간의 느슨함, 그리고 작가 특유의 중성적인 필치가 일종의 무덤덤한 평온함과 같은 잔상을 남긴다. 그것은 ‘여가’라는 전시제목처럼 시간을 길게 늘여놓은 듯한 한가로움, 나른한 봄날 오후의 느낌을 연상시킨다.

        'Excursion'이라는 전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전시에 보여지는 근작들 역시 사회적 의미의 영역에서 벗어난 여가 활동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 작품 속에는 공원에 모여 밤공기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 돗자리를 깔고 삼삼오오 모여 소풍을 즐기는 이들의 모습들이 등장한다. 달라진 점은 장면들을 4개의 연속적 시퀀스로 표현하지 않고 하나의 프레임 안에 그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로모 카메라 대신 일반 카메라를 사용했다는 것이 이러한 변화의 동기가 되었고, 참조물의 변화는 작품 구성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로모그래피 시리즈에서 박진아는 모든 조형적 문제들을 한 프레임 안에 응축시키는 것을 거부하고, 4개의 범주 안에서 다양한 회화적 가능성들을 실험하였다. 근작들에서는 로모그래피 시리즈에서 모색했던 문제들을 하나의 화면 안에 종합한다. 작가의 관심사가 단일한 장면으로 완결되는 구성으로 이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가장 눈에 띄는 작업은 <문탠(Moontan)> 연작이다. 달밤의 여가생활이라는 점에서 선탠(Suntan)의 의미를 유머러스하게 전도시킨 제목이 재미있고, 밤을 배경으로 택했다는 점도 새롭다. 밤의 호수공원에 모여있는 서너명의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행위들에 몰두하고 있다. 물을 마시거나, 무언가를 줍거나, 주머니에서 손을 뺀다거나 하는 지극히 평범하고 눈에 띠지 않을 사소한 행동들이다. 사진으로 찍히지 않았다면 기억조차 할 수 없는 행위들이지만, 각각의 포즈들에는 인물들의 개성이 재치있게 반영되어 있다. 박진아는 이러한 포즈들을 여러 장의 스냅 사진들에서 추출하여 하나의 화면 안에 조합하였다. 이 때문에 각각의 인물들은 서로 고립된 채 섬처럼 떠 있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박진아는 밤의 배경을 무대로 이들을 매우 적절히 배치하여 매력적인 조형적 결과를 만들어냈다. 상호관계가 없는 포즈들을 연합하는 것은 우연성을 수용하는 로모그래피 시리즈 보다 훨씬 더 정교한 구성을 필요로 한다. 전체 구도의 절반을 구획하는 어두운 흑색의 배경 역시 화면의 구성을 즉흥적으로 결정하지 못하게 하는 조형적 전제가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의도성 때문에 <문탠> 연작은 박진아가 추구하는 회화적 지점을 좀더 명확하게 보여준다. 세 점의 작품에서 동일하게 화면 우측에 반복되는 남자의 뒷모습은 특별히 시선을 끈다. 청바지에 운동화, 모자를 덮어쓴 채 어깨를 구부리며 한 발을 내딛고 있는 모습은 무심하면서도 어딘지 반항적으로 보인다. 같은 포즈의 반복은 작가가 이 포즈가 주는 느낌에 매료되었음을 알려주지만, 그 모습은 가능한한 중성적인 방식으로 그려져서 화면 구성의 중심축을 이루는 객관적 조형 도구로서 활용되고 있다. 박진아는 대상에 대한 감정이입을 배제하고 언제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대상이 회화 안에 위치되는 방식, 즉 회화 자체의 논리가 드러날 수 있게 한다.   

        박진아의 작업이 이러한 중성적 특질에도 불구하고 미묘한 서정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한낮 야외에서의 로모그래피 시리즈가 오후의 한가로운 정서를 드러낸다면, <문탠> 연작은 밤공기의 여운을 통해서 봄밤의 가벼운 흥분과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이와 같이 담백한 정서는 박진아의 작업을 즐길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동력이다. 대상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측면에 대해 가지는 관심과 그것을 회화라는 객관적 체제 안에 위치시키는 태도 사이의 미묘한 균형이야말로 박진아의 작업이 담보하는 독창적인 지점이다. 바로 이 지점 위에서 박진아는 자신만의 회화의 답을 지속적으로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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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처럼 그리기의 문제 _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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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아 개인전 금호미술관 2005
(2005.11.17~11.27)
전시도록 서문
 

여가’처럼 그리기의 문제

글.이은주(큐레이터, 미술사)

        박진아의 최근작들에는 화면이 4개로 분할된 반복적인 장면들이 등장한다. 아주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일어나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이 그림들은 렌즈가 4개 달린 로모 카메라로 포착된 실제 장면들을 그린 것들이다. ‘여가’라는 전시의 제목에서 암시되고 있듯이 작가가 포착한 모습들은 주로 특별한 일 없이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다. 팔을 뻗는다든지 오렌지 껍질을 깐다던지 무릎을 굽힌다던지 하는 매우 평범한 동작들이 주요한 내용으로 드러나고 있는 이 작업들 안에는 촌급을 다투는 사건이나 치열한 갈등과 같은 드라마틱한 요소들이 없다. 이 지극히 평범한 행위들이 로모 카메라라는 매체를 통과하면서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느린 속도로 포착되는데, 장면들마다 드러나는 포커스와 동작의 미묘한 차이는 시간의 틈을 느슨하게 연장시켜놓은 듯한 한적한 느낌을 배가시킨다. 그러나 박진아의 근작들이 담아내고 있는 한가한 오후의 정경, 무언가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시간의 느낌과 같은 것들은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나 일상의 소중함을 역설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작가가 견지하고자 하는 하나의 태도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박진아의 어법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성은 실제 삶에서 야기된 장면들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특정한 삶의 흔적을 강하게 각인시키려는 의도를 배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슬쩍 스쳐지나가는 듯한 장면들을 통해 보여지는 그의 작업 속 일상은 생활의 무게를 전하는 다큐멘터리적인 리얼리티라던가 그 안에 내재될 수 있는 서사적인 내러티브들의 여지를 모두 걷어낸 지점에 놓여있다. 엄밀하게 말해서 그가 보여주고 있는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동작들과 정황들은 그 특별하지 않음 자체를 드러낸다. 그의 화면은 딱히 의미를 부여할만한 사건을 파생시키지 않기에 그냥 흘려보내도 되는 정도, 하지만 결코 하찮게 느껴지지 않는  정도의 존재감을 매우 일관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여가’라는 제목은 박진아의 근작들의 발생 지점을 유추할 수 있는 많은 의미를 함축한다. 박진아의 작업이 발산하는 느슨함과 여유는 비단 로모 카메라가 만들어내는 연속적 시간성에서 나오는 것 뿐 아니라, 생산과 노동의 꽉 짜여진 구조에서 비껴있으며 사회적인 생산가치로서 전환되지 않은 소재들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공원에서 돗자리를 깔고 담소를 나누는 것과 같은 느낌의 소소한 행위들로 채워진 그의 화면들은 어떠한 사회적 행위가 되는 특정한 ‘일’의 무게로부터의 일탈 혹은 저항을 담보한다. 그렇다고 이 작업들이 생산적 노동의 반대급부로서의 ‘유흥’에 천착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일과 유흥이라는 사회적 생산과 소비의 구조 양극을 모두 비껴서 있는 여백들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박진아의 작업에서 느껴지는 한가로움은 바로 이 여백에서 비롯된다.

        구름 흘러가듯 한가한 이 느낌은 언제든지 다시 흘러갈 것을 전제하고 있기에 스틸 라이프(still life)처럼 정지된 씬(scene)을 ‘포획’하고 있지 않다. 박진아는 어쩌면 이러한 느낌을 통해서, 구축되고 성취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저항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한 순간의 프레임 안에 모든 것을 응축시켜 표현해야하는 전통적 회화평면의 모럴에 대한 저항이라고 볼 수 있다. 박진아의 근작들에는 단호함과 집요함을 필요로하는 ‘응축’된 것들이 배제되고, 대신 4개의 연속적인 시퀀스들이 만들어내는 완만한 ‘흐름’이 놓여진다. 하나의 포커스가 아닌 4개의 포커스, 하나로 완결되는 장면이 아닌 4개의 연속적 장면들은 하나의 주제를 향해 모든 요소들이 응집되어서 어떤 단일하고도 핵심적인 내용을 한번에 전해야하는 2차원 회화 평면의 사명을 살짝 비껴간다. 기법에 있어서도 힘주지 않고 스윽스윽 그린 듯한 느낌이 무언가 첨예하게 에너지를 집중시키고 치열하게 응집시켜서 나오게 되는 회화적 완성도의 목적을 비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꽉 짜여진 구조를 담보하는, 밀도있게 완성된 마스터피스 앞에서 느끼게 되는 긴장감이나 카타르시스, 시각적 충격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세계이다.

        박진아는 로모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그림으로 그릴 때 여러가지 회화적인 표현의 문제들을 해결해야 할 기회를 갖게 된다고 언급했다. 로모 카메라의 특성상 빛이 풍성한 야외에서의 가벼운 스냅사진을 주로 찍게 되기 때문에, 이러한 장면들을 회화로 옮길 때 빛과 동작의 표현 문제와 더불어 사건의 순간적인 정황을 효과적으로 표현해내야하는 과제가 생긴다. 또한 카메라 렌즈가 4개이기에 생기는 약간의 앵글과 시간 차이로 인해 동일한 주제의 이미지 안에서 생기는 구도와 움직임, 빛과 같은 아주 미묘한 차이들이 좀더 부각되기 에, 화면간의 차이점들이 화면 안 행위 자체보다도 작품 속에서 더 중요한 요소로 인지된다. 박진아는 로모 카메라로 찍은 이미지를 그대로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4개의 화면에 의도적으로 더 차이와 변화를 주면서 어떤 것은 보다 더 정교하게, 어떤 것은 스윽스윽 그리는 식으로 운율을 부여하고 있으며, 장면들의 반복과 차이를 통해서 하나의 이미지를 완성해나간다. 4개의 시퀀스가 있기 때문에 포커스가 하나로 집중되지 않으면서도 그림을 하나로 그려야하는 문제가 주어지는 것이다. 박진아는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이러한 과제들을 통해서 ‘회화의 완성도’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이어아키(hierarchy)가 없는 수평적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작가 스스로 언급하고 있듯이, 박진아의 근작들은 화면을 컨트롤하는 하나의 강력한 체계와 힘의 작용에서 벗어난 영역 안에서 가능한 회화적 완성도에 대한 실험이다. 이러한 모색을 통해 박진아는 전통적인 걸작의 신화들이 안겨주는 부담감을 전도시키면서 그것으로부터 비껴간 시선을 통해서 회화의 문제를 되짚어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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