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아 회화에 대하여_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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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zed & Painted (2008.4.17~5.15, 서미앤투스, 서울)
전시도록에 실린 글

박진아 회화에 대하여

글. 김현진(독립기획자)


작가 박진아는 자기 주변의 인물들과 그들이 서로 어울리는 시간 속에 등장하는 장면들을 그림으로 옮기곤 한다. 주로 야외에서, 밤의 공원에서, 어떤 파티에서 어울리는 친구들의 모습을 많이 그리곤 하는데, 초기에는 로모 카메라를 통해서 초당 간격을 두고 두 개 혹은 네 개의 프레임으로 찍혀지는 대상의 모습이나 움직임을 담아내는 시리즈를 많이 선보였다. 2007년 작가의 개인전에서는 이러한 일상을 보여주는 방식이 분할된 화면에서 점차 하나의 캔버스 화면으로 옮겨가고 있다.


작가의 많은 회화 작품들은 꽤 빠르고 대담하게 움직이는 붓의 움직임 속에서 축약 적으로 완성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구체적이고 입체적인 묘사와는 거리가 먼 상당히 어눌하고 느슨한 묘사력을 보여줌에도 작가는 대상이 되는 인물의 성향이나 특징을 매우 잘 드러내며, 두껍게 바르지 않으면서도 시원하게 지나간 붓질이 만들어 내는 질감과 절대 가볍지 않은 색과 톤, 담박한 화면 처리, 이러한 형식적 특징을 통해 등장하는 담담한 서정성이 바로 박진아 회화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박진아의 그림 속에는 특별한 드라마들은 없다. 본인의 일상이나, 사적 교류 등에서 그림의 대상이 포착되고는 있지만 관찰자적 시선을 잘 유지하고 있어, 어떤 인물이 특히 더 아우라를 보이면서 우상화되어 등장하거나, 사람들 간에 매우 강한 친밀감을 보이거나 연민을 드러내는 등의 작가 개인의 감정이입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파티, 피크닉 장면 속에 있는 한 사람 혹은 여러 사람들의 모습들에 대해 꾸준히 어떤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다소 어두운 밤의 실내외 배경과 더불어 특별한 표정이 없는 인물 표현은 여러 그림 속에서 반복되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주가 되는 인물의 모습은 순간적으로 고립돼 있거나 주변 상황으로부터 겉돌거나 동떨어져 존재하는 듯 한 인상을 준다. 


예를 들어, <문탠> 시리즈는 공원에서의 밤 소풍을 보여주는데, 밤의 어둑한 시간 속에서도 유희적 주체로 존재하고자 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과 그들 사이에서 잔잔하게 울리는 공명을 드러낸다. 이들의 밤 소풍은 사실 여럿이 함께 있지만 각자 개별적인 행동을 하고 있어 매우 독자적이고 서로 간에는 소원해 보이기까지 한다. 때문에 이들의 모습은 밤 산책을 나오게 된 충동적이고 즉흥적일 듯 한 상황이나 왁자한 파티나 소풍에서 연상되는 분위기에 비해 오히려 호젓하거나, 다소 서로 간에 머쓱하다는 인상까지 받게 되는데, 그 이유는 일종의 공동의 이벤트라는 설정 속에서도 인물들 간의 자리와 위치가 매우 독립적으로 포진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그림 시리즈는 다소 무심하지만 분명 함께하는 매우 아이러니한 공존의 관계를 넓은 여백의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흥미롭게 완성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작가의 또 다른 작업의 제목인 <Island>처럼 종종 옹기종기 모여도 결국 ‘섬’같은 사람들의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최근 작가는 특히 먹는 모습에 집중하여 새로운 작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음식은 근본적으로는 파티와 사교의 흥을 돋우기 위한 기본 요소이지만, 식욕이라는 측면에서 누구나에게  먹는 행위는 가장 순수한 것이기도 하다. 작가는 파티와 같이 일상을 탈출하는 순간에 오히려 음식을 집어 드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본능적인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그 순간의 한 주체가 보이는 집중력과 주변 정황으로부터의 배제, 그 절대적 찰나에 강한 대비를 보이는 어느 누군가의 모종의 괴리됨에 주목한다. 작가의 또 다른 최근 작업인 <소나무가 있는 공원>은 다소 진부해 보이는 전형적인 아카데믹한 화풍의 구도 속에 과자 봉지를 들고 먼 곳을 응시하며 먹기에 열중해 있는 한 여성을 등장시키고 있다. 다소 답답해 보이는 그림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붉은 색의 과자 봉지를 통해 전복되고 순간 상투적인 그림의 외부로 탈출하는 통로가 된다. 또한 디제이 박스에 몰려서 무엇인가에 집중한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작가는 그러한 고도의 몰입 속에서 순간적 진정성이나 진심과 마주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 순간은 어쩌면 고도의 정지된 순간에 우리가 만나는 또 다른 세계, 즉 몰입과 괴리를 동시에 안겨줌으로써 급진적 탈존을 형성해내는 ‘바깥(dehors)'의 경험일 지도 모른다. 다수의 웅성거림 속에 고립된, 혹은 함께하면서도 스스로의 섬이 되곤 하는 ‘어떤’ 주체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지극히 평범한 순간에 매우 강렬한 어떠한 ‘바깥’과 마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박진아의 그림들 속에 담겨지는 장면들은 일면 평범하면서도 이렇듯 매우 많은 여운을 불러일으킨다. 이미 작업의 대상이 소위 녹록치 않은 제 삼의 삶의 방식들을 살아가고 그러한 삶의 가치를 공유하는 친구이자 또래의 젊은 동료들을 포함한 그들 삶의 풍경이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다소 어눌한 묘사력으로 그들의 정서와 그 일상의 질감들을 담박하게 압축하는 작가의 필치(筆致)는 이러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혹은 동시에 불안정한 삶의 궤적을 걷는 젊은 작가들의 주변적 삶의 질감들을 잘 드러내고 있다. 박진아 회회의 비범성은 다분히 일상적인 세계의 단편 속에서 작가가 포착하고 압축해낸 장면들이 우리를 일상이 스스로 내재하고 있는 풍부한 인식과 경험의 차원들로 안내한다는 데 있으며, 작가의 회화의 형식적 어법은 이와 더불어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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