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5.17-6.16)
전시카탈로그 서문
Excursion
글. 이은주(큐레이터, 미술사)
박진아의 세번째 개인전인 이번 전시의 제목은 'Excursion'이다. 2005년 금호미술관에서의 개인전이 ‘여가(Leisure)’라는 제목으로 열렸던 것을 기억한다면, 박진아가 반복적으로 취하는 모티프가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는 일상적 활동들에 집중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가’ 전시에서 보여졌던 작품들은 팔을 뻗는다던가 간식을 먹는다던가 하는, 특별할 것이 없는 일상적인 동작들을 소재로 한 것이었다. ‘로모그래피 시리즈’로 일컬어진 이 작업들은 하나의 장면이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4개의 시퀀스로 찍히는 로모 카메라의 특성을 이용한 연작들이었다. 그림 속 인물들의 평범한 동작들이나 로모 카메라가 배가시키는 시간의 느슨함, 그리고 작가 특유의 중성적인 필치가 일종의 무덤덤한 평온함과 같은 잔상을 남긴다. 그것은 ‘여가’라는 전시제목처럼 시간을 길게 늘여놓은 듯한 한가로움, 나른한 봄날 오후의 느낌을 연상시킨다.
'Excursion'이라는 전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전시에 보여지는 근작들 역시 사회적 의미의 영역에서 벗어난 여가 활동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 작품 속에는 공원에 모여 밤공기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 돗자리를 깔고 삼삼오오 모여 소풍을 즐기는 이들의 모습들이 등장한다. 달라진 점은 장면들을 4개의 연속적 시퀀스로 표현하지 않고 하나의 프레임 안에 그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로모 카메라 대신 일반 카메라를 사용했다는 것이 이러한 변화의 동기가 되었고, 참조물의 변화는 작품 구성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로모그래피 시리즈에서 박진아는 모든 조형적 문제들을 한 프레임 안에 응축시키는 것을 거부하고, 4개의 범주 안에서 다양한 회화적 가능성들을 실험하였다. 근작들에서는 로모그래피 시리즈에서 모색했던 문제들을 하나의 화면 안에 종합한다. 작가의 관심사가 단일한 장면으로 완결되는 구성으로 이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가장 눈에 띄는 작업은 <문탠(Moontan)> 연작이다. 달밤의 여가생활이라는 점에서 선탠(Suntan)의 의미를 유머러스하게 전도시킨 제목이 재미있고, 밤을 배경으로 택했다는 점도 새롭다. 밤의 호수공원에 모여있는 서너명의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행위들에 몰두하고 있다. 물을 마시거나, 무언가를 줍거나, 주머니에서 손을 뺀다거나 하는 지극히 평범하고 눈에 띠지 않을 사소한 행동들이다. 사진으로 찍히지 않았다면 기억조차 할 수 없는 행위들이지만, 각각의 포즈들에는 인물들의 개성이 재치있게 반영되어 있다. 박진아는 이러한 포즈들을 여러 장의 스냅 사진들에서 추출하여 하나의 화면 안에 조합하였다. 이 때문에 각각의 인물들은 서로 고립된 채 섬처럼 떠 있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박진아는 밤의 배경을 무대로 이들을 매우 적절히 배치하여 매력적인 조형적 결과를 만들어냈다. 상호관계가 없는 포즈들을 연합하는 것은 우연성을 수용하는 로모그래피 시리즈 보다 훨씬 더 정교한 구성을 필요로 한다. 전체 구도의 절반을 구획하는 어두운 흑색의 배경 역시 화면의 구성을 즉흥적으로 결정하지 못하게 하는 조형적 전제가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의도성 때문에 <문탠> 연작은 박진아가 추구하는 회화적 지점을 좀더 명확하게 보여준다. 세 점의 작품에서 동일하게 화면 우측에 반복되는 남자의 뒷모습은 특별히 시선을 끈다. 청바지에 운동화, 모자를 덮어쓴 채 어깨를 구부리며 한 발을 내딛고 있는 모습은 무심하면서도 어딘지 반항적으로 보인다. 같은 포즈의 반복은 작가가 이 포즈가 주는 느낌에 매료되었음을 알려주지만, 그 모습은 가능한한 중성적인 방식으로 그려져서 화면 구성의 중심축을 이루는 객관적 조형 도구로서 활용되고 있다. 박진아는 대상에 대한 감정이입을 배제하고 언제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대상이 회화 안에 위치되는 방식, 즉 회화 자체의 논리가 드러날 수 있게 한다.
박진아의 작업이 이러한 중성적 특질에도 불구하고 미묘한 서정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한낮 야외에서의 로모그래피 시리즈가 오후의 한가로운 정서를 드러낸다면, <문탠> 연작은 밤공기의 여운을 통해서 봄밤의 가벼운 흥분과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이와 같이 담백한 정서는 박진아의 작업을 즐길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동력이다. 대상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측면에 대해 가지는 관심과 그것을 회화라는 객관적 체제 안에 위치시키는 태도 사이의 미묘한 균형이야말로 박진아의 작업이 담보하는 독창적인 지점이다. 바로 이 지점 위에서 박진아는 자신만의 회화의 답을 지속적으로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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